철학자와 늑대를 드디어 다 읽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린 책. 초반엔 늑대와 개의 차이점에서 부터 시작해서 늑대와 사람의 차이에 관한 내용으로 옮겨가는데 인간이 보면 기분 나쁠만한 내용이지만 꽤나 재밌었던 부분이었다. 인간이 뭐 그리 잘났냐 라는게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정서이다.
후반부에 저자의 경쾌했던 태도가 암울해지며 세상을 향한 비관으로 가득한 클라이막스로 흐르는데, 늑대 브레닌의 죽음과 알콜중독 상태에서의 저술때문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늑대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들지 않을까 싶다. 늑대란 개와는 달리 고상하고 멋있게 다가온다. 특히 저자가 묘사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장면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늑대와 달려본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지구상의 인간이란 종족에 대해 고찰하게되며, 종국에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거나 회의감에 빠져버릴수도 있어 위험하기도 한)는 읽어볼 만한 책인듯 싶다.
인상깊던 구절들을 옮겨본다…. 근데 꽤 많아졌다.
p.63 왜 오로지 인간만이 수천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생명은 생물학적 유산에 속박되고 자연의 역사에 종속되어 살아야만 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인간의 오만함이 아닌 무엇이란 말인가?
p.90 큰 뇌는 집단생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사회적 동물은 비사회적 동물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 […] 바로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사회적 지능이 필요한 것이다.
p.142 인간은 스스로 악의 가능성을 조작하는 동물일 것이다. […] 영장류의 속임수와 계략은 자신보다 강한 영장류를 자신보다 약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 안의 영장류는 언제나 다른 영장류를 야화시킬 가능성을 모색하다. 그리고 항상 악을 행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p.163 신은 마음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의 입장에 서 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기에 동정심이 없다. 신에 대한 가장 근접한 정의는 아마 반사회적 존재, 소시오패스 정도일 것이다.
p.167 홉스는 자신이 알고 있던 야생성, 즉 ‘자연상태’로부터 ‘문명상태’로의 전환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 계약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약받겠다는 뜻이다. […] 그것이 사회와 도덕성의 목적이며 존재의 근거이다.
p.170 계약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하는 자는 문명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며, 도덕의 범주에서도 벗어난다.
p.172 계약에서는 이미지가 전부이다. 계약 조건에 따른 희생을 하지 않고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실제로 시간·노력·돈·안전을 희생하는 우둔한 상대방을 이용할 수 있다. 계약은 그 특성상 사기꾼에게 유리하다. […] 우리 영장류가 경멸하는 것은 어설픈 협장꾼들의 정교하지 못한 속임수일 뿐이며, 실제로는 속임수를 경멸하기는커녕 흥모한다.(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p.177 브레닌은 도덕적 수동자Moral patient이지 도덕적 행위자Moral agent가 아니었다. 브레닌은 자신이 한 행동이 뭔지 몰랐고, 그래서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었다.
p.179 롤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사회 구성의 가치를 어디에 둘지에 대한 정보를 모두 배제할 것을 주장했다. […] 나는 계약을 진정으로 공정하게 만들고 싶다면 인간이라는 사실과 이성조차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183 계약은 영장류가 서로의 관계를 통제하기 위해 개발한 장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p.185 너는 나를 보완해 주는가? 너와 있을 때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고 잃는 것이 무엇인가? […] 계산이야말로 계약의 본질이자 영장류의 본질이다.
p.205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떤 정부에게나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p.206 삶의 질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물 중독자가 아니다. 그러나 행복 중독자이다. 행복 중독자는 약물 중독자처럼 실질적인 도움을 주거나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는 것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p.207 스텔라 맥주를 진탕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는 즐거움은, 이제 품질 좋은 라투르 와인 한두 잔을 음미하며 느끼는 미묘한 전율로 격상된다.
p. 208 행복이 무엇이든 그엇은 감정이다. 영원토록, 부질없이, 감정을 추구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의 정의이다. 다른 동물은 감정을 좇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감정에 그토록 집착한다.
p. 218 내가 잘하는 것을 할 때, 그리고 동시에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때 생겨났다. 이 기쁨은 말하자면 앎의 기쁨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p. 282 우리는 턱관절로 팽오쇼콜라를 씹고 있을 때 시간이라는 선위에 줄줄이 이어진 수많은 팽오쇼콜라들로 구성된 무수한 점들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라는 선의 앞뒤로 말이다. 우리는 그 순간 자체만을 즐길 수 없다.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로 그 순간만의 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은 끊임없이 앞으로 뒤로 유예되어 버리고 현재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현재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현재의 순간은 유예되어 시간 속에 퍼져 있다. 순간은 비현실적이다. 순간은 항상 우리들을 피해 달아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삶의 의미는 절대로 순간에 있을 수 없다. […] 인간에게 순간만으로 완전한 그런 순간이란 없다. 인간의 모든 순간들은 불순물이 첨가되어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순간들은 혼탁해져 있다.
p.303 늑대는 매 순간을 그 자체의 보람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 영장류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인간에게 매 순간은 끝없이 유예된다.
p. 318 영장류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기준으로 자신이 평가한다. 하지만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의 사실이나 소유의 정도가 아니다.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