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사회에서의 가치 기준이 너무 빨리 변해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구분이 무의미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픽 디자인 사회에서
새로운 걸 추구하는 성향은 더이상 진보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새로움을 열망하고 실험과 혁명을 갈망하는 분위기가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강타했고
당시 거의 모든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이런 분위기에 휩쓸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부해졌고 어느새 새로움을 쫓는 자세 자체가 보수적인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 ‘여성적 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 ‘컴퓨테이셔널 컨셉’과 같은 사뭇 진지한 개념들이 진보 진영을 이루더니(사회적 책임은 60년대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진보의 얼굴을 하고 있음), 곧 그런 말들이 귀에 익숙해지자 ‘헬베티카로 되돌아 간 젊은이들’ 또는 ‘최소화를 재해석하는 일본인들’ 또는 ‘손글씨를 남발하는 펑크들’ 등이 요란스레 등장해 이전의 심각한 작자들을 몰아내고 각자 진보의 한자리를 차지했죠. 그리고 이 시기에 맞춰 네덜란드 꼬리표를 단 ‘무심한 듯 불친절한 디자인’도 슬그머니 진보의 한 귀퉁이에 들어왔습니다.

10년 쯤 지난 지금. 이들도 확실히 보수적으로 보입니다.
앞에 열거한 모든 디자인 성향이 각자 진보를 지향하는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고,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식상해져서 진보라고 보기 뭣하고, 비주류인 척 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주류고, 뭐가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군지, 누가 원조인지, 그들의 추종자는 누구인지, 추종자의 추종자는 누구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고…

미국 기업 디자인이 만신창이가 된 후로는
뚜렷한 진보와 보수, 헤게모니가 존재했는지 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그런 개념이 꼭 있어야만 하는 걸까요?

designersreading 의 이지원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