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는 억지로 허세를 부리는 듯한 억양이어서 하찮은 잔꾀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윽고 마호니가 나를 알아보고는 "어." 하며 큰 소리로 응답했다. 마호니가 들판을 가로질러 나에게로 달려올 때 내 가슴은 반가움으로 얼마나 뛰었던가! 그는 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듯이 달려왔다. 그리고 나는 뉘우쳤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그를 약간 무시하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뜻밖의 만남>

그 어둠 속을 뚦어져라 쳐다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해영에 쫓겨 농락당하는 한 마리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두 눈은 번민과 분노로 불타올랐다.
<애러비>

그녀는 무기력한 짐승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사랑이나 작별 또는 인식의 아무런 표시도 그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이블린>

저번주 독서모임에서 <더블린 사람들>이 선정되어 책을 읽은 후기와 토론 후기를 정리해 본다.

더블린을 소재로 한 <더블린 사람들>은 13편의 짧은 단편들을 묶은 첫 작품이다. 내가 읽은 건 펭귄클래식코리아 선집이었는데, ‘음울한 도시의 초상’이라는 긴 서문이 나온다. 그 서문에서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제임스 조이스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와 함께, 각각의 글이 쓰여진 배경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본 소설은 훨씬 가볍고 재밌었기 때문에 이 서문은 맨 뒤에 넣는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생각보다 쉽고 경쾌하다. 5~10장 내외의 분량으로 눈에 그려지는 묘사와 여운이 남는 마지막 결말이 맘에 들었다. 그의 결말짓는 방식은 담담히 때로는 경쾌하고 밝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구김이 있고 삶이 힘들지만 나쁘지 않다. 삶은 원래 이런 것이니까. 아주 낙담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다 ‘앗’하며 소설은 갑작스럽게 끝난다. 밝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의 얼굴에 아주 잠깐 슬픈 표정이 스친 순간 영상과 소리가 어색하게 정지하듯이. 우리 주변의 이야기같은 생활들은 그 환경에 비해 밝고 긍정적이라 왠지 더 서글펐고, 애써 슬픔이나 실망을 감추려는 듯이 보인다. 일상이라면 1초도 안되는 새에 지나갔을 그 순간과 감정을 깊고 진하게 증폭시킨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단락은 끝나고 다음 편의 제목이 펼쳐진다. 토론하기전엔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부분이 불편하다는 분도 계셨다.

단편은 저마다 다른 주제와 인물들을 다룬다. 20세기 초반 더블린을 무대로 한다는 공통점외에 인물들의 신분이나 연령, 위치나 맥락 모두 다르다. 삶의 굴곡과 위에서 아래까지 가진 인물들을 다루면서, 아니 도대체 나이가 몇살이길래 했던 그의 당시 나이는 23살. 젊은 조이스가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동안 인생의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나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특히나 중년의 사랑을 다룬 ‘가슴 아픈 사연’은 가슴을 울렸다. 24살의 나이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걸출한 사랑 에세이를 쓴 알랭 드 보통도 생각이 난다.

마지막 단편이며 강신주의 감정수업에도 실린 ‘죽은 사람들’혹은 ‘죽음’은 비교적 가장 난해했던 소설이다. 아내를 너무나 세속적이라고 좋지않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건 나였구나 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주인공.

읽는 내내 백년 전 더블린의 이야기가 다른 나라 이야기 같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녀들에게 집작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라던가, 내가 있는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을 동경하고 떠나고픈 열망이라던지, 찌질하고 갈 곳없는 젊음의 방황이라던지, 우리네가 벗어나기 힘든 질투와 멸시의 감정이라던지. 그 많은 감정들이 짧은 장면들로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어쩜 이렇게 간단하게도 나타낼 수 있을까. 참 잘쓰는구나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분명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던 단편집과 재밌었던 토론. 오랜만에 괜찮은 소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