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고요함을 좋아한다.
어둠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암흑이었으면 좋겠다.

#1
밤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울때 창문밖에 하늘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밝음이 싫어서
커튼을 하나 더 달았다. 커튼이 덮는 부분은 빛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가장자리에서 새어나오는 약한 불빛이 더 눈에 띄인다. 포기해 버렸다. 그나마 전보다는 방이 훨씬 어두워졌으니까.
이젠 오히려 오디오 전원 표시등이 더 밝아보인다.
이 모든 빛을 차단하려면 관에라도 들어가야 할까.

#2
기술이 점점 발달하면
언젠가는 모니터가 아닌 눈에 착용하는 렌즈로 컴퓨터 화면을 볼 날이 올 것이다.
이미 개발하고 있는 중이니까. 상용화가 멀지는 않을것이다.
매력적인 기술이지만, 그 후가 궁금하다.
이것들이 보편화가 되면, 지금과는 참 많이 달라질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메일을 확인하고, 티비화면을 볼 수 있고, 친구들의 동향을 알 수 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편하게 전자 책을 볼 수도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다.
물론 원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이 휴대폰이라는 기계를 목줄처럼 달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러긴 참 쉽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를 끄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여유.
한강대교를 건너며 강물을 바라볼 여유,
모든 전기기기를 끄고 벽을 바라보며 사색할 여유
하늘을 바라볼 여유.
이어폰을 벗고 공기를 느껴볼 여유 같은거.
먼 옛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3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꾸는 편인데
요즘 들어서는 주로 다른 환경이랄까. 다른 세계? 다른 공간. 그런 꿈을 꾸는 듯 싶다.
그곳은 지금의 환경과는 매우 다른 느낌이고, 사람이 살고 사회가 있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곳이다. 그런 꿈에서 깨고 나면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 꿈속의 세계는 대부분 암울하다. 전쟁중이라던가 로봇이 인간을 지배한다던가 하는 식의 암울함이 아닌, 무기력함이다. 꿈속의 나는 그저 순응하고 체념한다.
hopeless
누구나, 지금의 현실이 엿같고 지랄맞다고 다들 불평불만 할 수는 있지만,
어쩌면, 그걸 표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내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공간일까,
우주학자들이 말하는 평행우주 중의 하나일까.

#4
꿈에서조차 교훈을 만들어 내다니, 나, 꽤나 긍정적으로 살고 있는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