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기 조금 전에 아무랜 맥락도 없이 문득 ‘소설을 쓰자’는 생각이 들어 쓴 것이 공교롭게 한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내게는 습작이라는 것이 없다. 처음 쓴 것부터 전부 그대로 ‘상품’이 되었다. 그때는 뭐,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마음 편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뻔뻔스러운 일이다. 흠흠, 이건 내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사실을 쓰고 있을 뿐이다.
나는 ‘수상이 결정되었습니다’하는 연락을 받고 출판사에 가서 담당자를 만났다. 그리고 출판부장(인지 누군지)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보통의 의례적인 인사이다. 그랬더니, ‘당신 소설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지만, 뭐, 열심히 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마치 실수로 입에 넣은 것을 퉤 하고 뱉어내는 듯한 어조였다. 이 녀석, 부장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잘난 척 말할 것까진 없잖아 하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들었을까? 내가 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소설이 상담히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출판사 내부에서도 ‘이런 소설은 문학이 아니다’하는 소리가 있었다. 그야 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마지못해 상을 준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주는 상이라면, 겉으로만이라도 좋은 얼굴 좀 하면 어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혼자 정원 의자에 앉아 뒤돌아 보니, 나라는 인간에게도, 내가 쓴 소설에도 상당히 문제가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인간이 상당히 문제가 있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선가 뒤에서 손가락질을 받아도 어쩔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쯤 마음이 편해진다. 인격과 작품에 대해서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 ‘미안합니다. 원래 상당히 문제가 있어서요.’하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적절한 예일지도 모르겠지만, 태풍과 지진이 모두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할 수 없잖아. 어차피 그게 태풍(지진)인걸.’하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얼마전에 독일의 한 신문사에서 편지가 왔다. 인기 있는 텔레비전 공개 문예 비평 프로그램에서 독일어로 번역된 나의 책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이 다뤄졌는데, 레플러 여사라는 고명한 문예 비평가가, ‘이런 것은 이 프로에서 추방해 버려야 한다.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문학적 패스트푸드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거기에 대해서 여든이나 되는 사회자가 일어나서 나를 뜨겁게 변호했다(해 주었다). 결국 레플러 여사는 화가 나서, 흥, 이런 불쾌한 프로그램에는 절대로 출연하지 않겠다고, 12년 동안 출연했던 레귤러 패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 문제를 무라카미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의 편지였다. ‘그러니까, 원래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요, 정말로.’ 하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고해 주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요즘 블로그가 참으로 심심해지고 있어서, 참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글을 무단으로 도용합니다.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차이는 분명이 존재하고 있고 고유의 스타일이 있지만,
이런글은 단 한사람밖에 쓰지 못한다는거,.
어쩌면 유희열이 글을쓰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