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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것은 5주 전인데 이러저러해서 읽지 못한채로 반납하고 독서모임일을 하루 남겨놓고 하루만에 다 읽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스터디그룹의 승준님이 보여주셨을땐 매우 유익할것으로 보여 읽어보고 싶었지만, 역시 건전한 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드디어 완독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너무나 재밌고, 내용도 훌륭했으며 나도 모르게 내 고민을 해결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답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문제를 말이다.

이 책

이 책은 일단 잘썼다. 일본인은 책을 잘 쓰는 것일까. 편집자가 좋은 사람인걸까. 글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가끔은 가볍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전 원래 진지한 사람입니다 하는 듯한 자세 말이다. 베어있다는 표현처럼, 분위기가 글에서 뚝 뚝 묻어나온다. 또한 자본론과 빵집 운영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너무 잘 조화를 이룬다. 저번에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철학자와 늑대’도 늑대 이야기와 철학 이야기를 이와 같은 형식으로 잘 버무리려고 했었는데, 왠지 후반부로 지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균형을 너무 잘 잡았다. 글의 구성도 마치 영화처럼 시공을 오가며 긴장시켰다가 웃음을 자아냈다가 감동을 잔잔히 전하곤 한다. 번역의 힘인가, 편집의 힘인가. 여하간 흐름이 너무 좋았다.

문체

군더더기가 없다. 일본문학의 특징일까. 아니 모든 잘 쓴 글은 뺄 수 없을 때까지 빼고 또 빼야 한다. 빼는 것을 참 잘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신한 표현들.

부패와 발효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온다.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론 나오지만 이를 경제와 연관시켜 보는 시각이 재밌다. 모든 생물과 유기물은 발효나 부패를 거쳐 다시 순환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꾸준히 늘어날 뿐 부패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부패하지 않는 경제는 문제가 있다. 다함께 경제를 부패시키자.

자본론 이야기

마르크스가 이렇게 쉽고 재밌었단 말인가.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자본론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원래 자본론이 이렇게 쉽게 재밌을리는 없을것 같은데, 궁금해서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겠다. 또한 요즘들어 젊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느끼는 피로를, 백년도 전에 간파한 마르크스는 역시 그냥 네임드가 아니였다. 이참에 우리모임도 자본론을 읽는거다.

이 책에 자본론이 구성되는 과정이 쉽고 재밌게 표현되어 있어서 아래에 정리해본다.

자본주의의 기본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 장치의 근본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데,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드는 열쇠는 바로 노동력에 있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이윤이 생기니 자본가가 좋다.

상품이란 무엇인가.

  • 사용가치가 있있어야 한다 : 누군가가 그걸 필요로 해야 한다.
  • 노동에 의해 만들어질 것
  • 교환할 수 있는 것
    교환할 수 있는 대상의 크기를 ‘교환가치’라고 한다.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 노동시간의 크기다.
수요와 공급이 아니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특징

  • 사는 사람은 자본가뿐이다.
  • 교환 가치는 임금이다.
  •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비 및 양육비용과 기능 습득에 비용을 합한 금액으로 구성된다.

이윤의 발생 과정

노동자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킨다. 그럴수록 노동자는 힘들어지지만 노동자인 이상 어쩔 수 없다.

기술혁신

기술혁신은 더 많은 상품을 만들게 하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듯이 보인다.
아니다. 기술혁신은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리고, 노동자의 생활비와 양육비가 낮아진다.
그 결과 노동력의 교환가치가 떨어진다. 따라서 임금도 낮아진다.
또한 기술혁신은 노동을 단순하게 만들기 때문에 기술습득 비용을 낮춰 임금도 낮아진다.

음식

음식 값이 쌀수록 생활비가 싸고, 임금이 싸진다.

노동자가 어떻게 상품이 되었는가

노동자가 될 수 있는 조건:
자유로운 신분일 것.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결론

책 자체도 재밌었고, 내용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내 고민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 반가웠던 것 같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자본주의를 벗어난다기 보다는 자본주의 안에서 지혜롭게 사는 방식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 방법은 바로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것. 자본주의에서 불어나는 돈이 문제를 만든다고 보고, 돈으로 이익을 남기지 않는 결심을 한 것이다. 어려운 결단이고, 환영하는 바이다. 그런 방식으로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바로 이웃인 우리 한국만 봐도, 사람들이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돈에 집착하게 된다. 그럴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보기엔 이타루의 이야기도 한낱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수도 있다. 어쩌면 거기엔 완벽한 해법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건 안된다며 책을 덮기보다는 이런 식의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만약 나라면 하는 생각으로 더 좋은 생각을 떠올려 보는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모여 실천을 이룬다면 언젠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산이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래는 인상적인 구절들

이런 진리를 깨달은 우리 부분은 돈도 ‘부패’하게 하고, 경제도 ‘부패’하게 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이런 움직임이 소리 없이 확산되고 있다. 언젠가는 지역사회를, 국가를,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15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일본의 변두리 작은 시골마을에서 소리없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프롤로그>

과연 시스템의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p.34

노동자가 혹사당하는 이유는 자본가(경영자) 탓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자본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구조에 편입되어 노동자를 학대한다는 것이다.
<자본론> 안에는 마르크스의 독특한 표현이 나온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 장치의 근본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데,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드는 열쇠는 바로 노동력에 있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자본가가 좋아하는 이윤이 생기니 노동자는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p.43 마르크스와 노동력 이야기

상품 가격의 비밀: 평균적인 역량을 기준 삼아 노동시간을 어림잡고 교환가치를 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교환가치의 크기를 돈이라는 척도로 표현한 것이 상품의 가격이다.
마르크스의 생각에 따르면 가격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교환가치에 있고, 수요와 공급은 가격을 변동시키는 2차적 요소라고 한다.
p.47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혁신은 결코 노동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p.63

기술혁신은 대부분의 경우 노동을 단순하게(또는 쉽게)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빵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이스트를 환영했던 이유도 노동의 수고를 확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언뜻 제빵 기술자에게도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사실은 노동자의 목을 죄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도 역시 노동력의 교환가치(임금)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노동이 단순해지면 기술은 필요 없어진다. 그러면 기술습득 비용이 굳는 만큼 임금도 낮아지는 것이다.
p.67 균과 기술혁신 이야기

이스트를 사용해 누구라도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빵 값이 싸지고 빵집 노동자는 싼 값에 계속 혹사당하게 된다. 또 공방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단순해져서 빵집 노동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빵집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
p.70

일(노동력) 값을 깎아내리기 위해 음식(상품) 값을 내린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구조다.
p.69

바로 이런 자연의 섭리를 결제활동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각자의 생을 다하기 위한 배경에 부패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면 부패하는 경제는 우리 각자의 삶을 온화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빛나게 해주지 않을까?
… 균이 했던 것처럼 사람이나 지역도 부패하는 견제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힘을 발휘하면 삶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p.85 부패하지 않는 빵과 부패하지 않는 돈

우리가 들여온 유기재배 쌀은 대량의 동물성 퇴비(단백질)를 먹고 자랐다. 그래서 영양과다 상태, 생명력이 약한 상태였던 것이다. 산과 들에는 대량의 동물성 퇴비 따위는 없다. 따라서 작물에 단백질이 포함되는 비정상적 사태를 천연 누룩균이 감지하면 ‘이상하다. 분해해서 흙으로 되돌리자.’라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자연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해소하기 이후ㅐ 천연 누룩균이 단백질을 분해하러 달려들게 되고, 그 탓에 밀에 포함된 단백질(글루텐)까지 모조리 분해되어 빵이 부풀지 못하는 것이다.
p.137 균의 목소리를 들어라.

엔데는 돈을 ‘사람들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교환을 위한 돈=빵집에서 쓰는 돈’과 ‘자본이 사업을 통해 불리려 하는 돈=자본으로서의 돈’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 두 종류의 돈에 동일한 ‘법정통화'(엔, 달러 등)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와 삶이 혼란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돈을 나누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빵집에서 쓰는 돈으로는 도시를 목적으로 한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돈, ‘지역통화’를 쓰자고 제안했다.
p.177 참다운 시골살이는 순환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노동자가 모두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 오히려 이 시대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 의미를 잘 표현한 것이 ‘소상인’이라는 단어
p.185 착취하지 않는 경영형태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소상인의 시대가 아닐까?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정비되어 규모가 작아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태넷과 소셜 미디어는 정보의 수집과 발신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큰 무기인가?
p.186 착취하지 않는 경영형태

Tags : #시골빵집 #자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