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우리다

마르틴 니묄러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신비주의적 전통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누리에 존재하는 유일한 진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어떤 식으로 볼 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너다, 라는 것이다. 어떤 것에 의미가 있는지, 어떤 것이 무의미한 지를 네가 의식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 어떤 것을 숭배할 지, 그걸 정하는 것은 바로 너다.”
from 스튜디오 판타지아 David Foster Wallace

”이와 비슷한 도시를 본 적이 있는가?“
쿠빌라이가 유람선 안에서 비단으로 만든 캐노피 밖으로 반지 낀 손을 내밀어 운하위에 아치 형태로 놓인 다리들과 대리석 현관들이 물 속에 잠겨 있는 제후의 궁들과, 긴 노에 밀려 지그재그로 가볍게 움직이며 오가는 작은 배들, 시장이 선 광장에 채소가 든 바구니들을 내려놓는 나룻배들, 발코니, 망루, 둥근 지붕, 종탑, 회색빛 석호에 푸른빛을 드리우는 섬의 정원 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황제는 외국인 대신을 거느리고, 몰락한 왕조의 옛 수도이자 칸의 왕관에 박힌 마지막 진주인 킨자이를 방문했다.
“없습니다. 폐하.”
마르코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비슷한 도시가 있을 거라는 상상은 했습니다.“
황제는 마르코의 눈빛을 살펴보려 애썼다. 그러자 외국인은 눈길을 아래로 깔았다. 쿠빌라이는 하루 종일 아무 말이 없었다.
해가 진 후 마르코 폴로는 왕궁의 테라스에서 자신이 속한 사절단의 성과들을 보고했다. 칸은 습관적으로 눈을 반쯤감은 채 이 보고를 음미하곤 했다. 그러다가 그가 처음 하품을 하면 그것이 시종들에게 횃불을 밝혀 황제를 침소인 별궁으로 모실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쿠빌라이는 피로에 몸을 맡기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다른 도시 이야기를 해보게.“
쿠빌라이가 이렇게 요구했다.
“······여행자는 그곳을 떠나 사흘 동안 북동풍이 부는 쪽으로 말을 달렸습니다······.”
마르코가 다시 말을 시작했고 여러 지역의 이름과풍습과물품들을 열거했다. 그는 끝없이 보고할 수 있었지만 이제 항복할 사람은 바로 그였다. 새벽이 되자 폴로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제 제가 알고 있는 도시란 도시는 폐하께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아직 자네가 말하지 않은 도시가 하나 남아 있네.”
마르코 폴로가 고개를 숙였다.
“베네치아.“
칸이 말했다.
마르코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폐하께 말씀드린 게 베네치아가 아니라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 자네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본 적이 없네”
“도시들을 묘사할 때마다 저는 베네치아의 무엇인가를 말씀 드렸습니다.”
“내가 다른 도시들에 대해 자네에게 물어볼 때는 그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이지. 그러니 베네치아에 대해 물어볼 때는 베네치아 이야기를 해야 해.”
“다른 도시들이 지닌 특징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잠재하는 최초의 도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게 그 도시는 베네치아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베네치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도시에 대해 자네가 기억하는 것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그대로 묘사해야 했을 걸세.”
호수의 수면 위에 잔물결이 일었다. 송나라 때 지은 오래된 구릿빛 왕궁의 그림자가 물에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반짝였다.
“기억 속의 이미지들은 한번 말로 고정되고 나면 지워지고 맙니다. 저는 어쩌면, 배네치아에 대해 말을 함으로써 영원히 그 도시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도시들을 말하면서 이미 조금씩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성문 밖에는 구정물만 흘렀다. 철든 후부터 미달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가엾은 미달. 나는 어디든 나를 따라다니는 미달이 싫었다. 사람들 앞에서 미달이 팔짱을 껴오면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젊은 날, 나는 끝없이 성벽을 돌며 모든 門을 두드렸다. 열리는 門은 없었다. 그들은 말했다. “당신은 여기 들어올 수 없습니다. 들어오려면 그녀를 버리고 오시오.” 성벽 너머에서는 향긋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상의 모든 門 앞에서, 나는 되돌아왔다. 그때마다 미달을 떼어내고 싶었지만, 그것도 사랑이었을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미달을 껴안고 울었다. 아직 햇빛이 아름답던 시절이었다.

성문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달이와 함께 성문 밖에서 내 반생이 흘러갔다. 검은머리는 반백이 되었고, 나도 자존심이 있는 놈, 언제부턴가 나는 더 이상 성문을 찾지 않게 되었다.

뒤늦게 나는 성문 밖이 좋아졌고 미달이 좋아졌다. 미달이 좋아져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내 옆에 없었다. 그녀를 안은 채 그녀를 버리려고 성벽 주위를 돌던 수십 년 세월만이, 거기, 폐허처럼 있었다.

via 타라의 눈물

최근 부쩍 자주 듣게 되는 디자인을 둘러싼 디자이너의 자기혐오는 그리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닐지 모른다. 이는 비단 필립 스탁 같은 명사 디자이너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픽디자이너건 아니면 제품디자이너건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흔히 우울한 자조를 듣기 일쑤다. 어쩌면 그들은 언젠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며 사회개혁가로서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희망에 잠시 부푼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지금 디자이너들이 현존하는 세계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극적 정치를 일컫는 이름인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디자인 따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뿌듯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업 디자이너가 된 그들은 비록 한 줌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디자인에 마련되었던 그 자부심이 사라졌다고 토로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혐오와 경멸에 있어 디자이너를 능가하는 이들도 달리 없을 것이다. 전후 미국에서 발전한 디자인을 압축하는 말이 “비즈니스를 위한 디자인”이었고, 이것이 지배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며 디자인을 둘러싼 다양한 지역적 실천을 제거하고 모든 디자인 행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바로 그런 담론을 대표하는 미국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의 유명한 표현처럼 디자인은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미려한 판매 곡선”을 위하여 복무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결국 지금 우리에게 디자인은 클라이언트를 위한 비굴한 부역에 불과하다는 푸념에 대해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라 물정모르고 디자인 동네에 뛰어든 자신을 책할 일이라고 대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조금 잔인하고 냉소적이라면, 대중매체가 버젓이 말하듯이 디자인은 “돈 버는 감성”에 지나지 않으며 디자이너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시녀라고 자조하는 이들에게 디자인은 무고하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쳐야 할지도 모른다. 디자인은 결백하며, 다만 디자인을 착취하고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여 증식하기 위해 이름 남용하는 자본의 경제적 합리성이 문제일 뿐이라고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적 합리성 바깥에 놓인 디자인을 상상할 수 없다면, 지금 디자인과 경제 현실을 잇는 힘과 논리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 디자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上) 서동진

서동진씨는 예전에 디자인문화재단 오픈 행사때 찾아갔다가 우연히 강연으로 뵈었던 분이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디자인플럭스 저널 01’에 그때 텍스트로 사용했던 내용이 수록되어 반갑기 그지 없다. 그때 만났던 서동진씨는 참으로 인상 깊었던 분이었다. 무엇보다도 본인을 디자인에 관심 갖는 사회학자라고 하시면서 디자인에 대한 너무나 해박한 지식과 조리있는 화술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쩌면 내가 무식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청중이 열명 남짓했던 강연에서 “공공디자인은 위험하다”라는 말에 디자인에 대한 핑크 빛 미래를 꿈꾸던 내게 참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 후로도 이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아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한편, 위의 내용과 같은 절절한 회의감에 실망도 많이 했었다.

책으로 출간된 디자인플럭스에서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 보면서도 이해 가지 않았던 많은 구절들이 머릿속에 들어오더라.

과연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무엇일까. 이 답을 찾는 여행이 길어질거란 예감이 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디자인이 단지 모양을 예쁘게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_들추어보기
내가 참 못하는 일이다.
수업시간에 정리한 노트 다시 보기, 저장했던 즐겨찾기 다시 방문, 인상깊은 웹페이지들, 글 잘쓰는 사람, 등 등 다시 보는 일이 그렇게 힘이 든다.
열심히 등록한 RSS가 110여개를 넘어서고, 이 중 중요한 글로 표시해 놓은게 220여개, 즐겨찾기 해놓은 사이트가 120여개, 부끄럽게도 거의 다시 펼쳐보지 않는다.
새로운 변화와 창조에만 호기심이 동한다.
왠지 내가 지나온 길에는 호기심이 뚝 끊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즐겨찾기를 하고, 중요한 글로 분류하고, 이미지를 정리한다. 어쩌면 그 행위 자체를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_우주와 블랙홀
요즘 스위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공 빅뱅실험? 혹자는 지구 멸망 실험덕분에 시끌시끌하다.
개인적으로는 지구가 멸망할 가능성이 있다니 두근두근한데, 정작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로써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혀 낼 수 있다고 하니 물리학자들은 참 설레이겠구나 싶다.
쉽게 말해서 이 실험은 거대한 실험기계 안에서 양성자 두개를 엄청난 속도(거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회전시키다가 충돌시켜서 이 때 발생하는 현상을 촬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주는 태초에 아주 미세한 작은 덩어리에서 지금과 같은 우주로 팽창하였다고 한다. 이 실험은 최초의 팽창할 때의 모습을 재현한다는데 의의가 있겠다.
그래서 과연. 팽창하기 전의 공간. 빛도 암흑도 없는 그 공간, 우주라는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그 공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_안도 타다오
연전연패
그의 치열한 고민과 인생들
건축이란 건물을 디자인한다기 보단 현실에 대한 투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 역시 비슷한 점이 참 많구나.
그의 철학과 고민이 담긴 작품들이 단지,
예쁘다 멋있다
또 누군가는 저런 건축물을 이곳에도 지어서 많은 관광객을 부르자라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씁슬하기 그지 없다.

_그리고
재미있는 광고들

가끔
어떤 누군가의 어떤 앨범을 듣게 되고 감탄할 때가 있다
감동에 젖어들어
아주 좋은건 아니지만 묘하게 끌린다고 생각하다가
이외에 다른 앨범을 들어보면
어쩌면 정말 좋은 노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 다른 여러 곡들을 듣다보면
처음 들었던 노래보다 좋은 노래가 없더라

가끔
그럴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