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키다
표준어였구나. 발음표기는 그렇다 쳐도 사이가 붙어있는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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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글을 쓸까 라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항상 내가 잘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이 빠지는 것 같다. 어떤 블로그나 댓글에서조차 잘 쓰는 글은 혹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은, 빛이 난다. 아 재능이란 이런거구나.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물론 잘 쓰는 사람이 되려면 많이 써야 할 것인데, 나는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다지 그럴 것 같진 않으니 나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이네) 그런 고민끝에 다다른 한가지 방향은 이렇다.
- 아마도 난 글을 썩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좋아하는 것 같다.
- 그건 아마 말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것 같다. 난 내가 과묵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만보면 쉴새없이 말하고 있을 때도 있으니.
- 그 누군가에게 말 하듯이 글을 쓰자. 좀 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어깨 힘 빼고. 그냥 말하듯이.
- 잘쓴글이 아니더래도 어쩌냐. 그냥 솔직하게 쓰자.
사진도, 디자인도 참 좋다.
칠판에 글씨를 쓰면 분필의 모양이 바뀐다. 쓴다는 것은 조각을 하는 것과 같으며, 글을 쓰는 사람은 언어의 조각가이고, 설계사는 선의 조각가이다. 글로 된 문서와 이미지 파일이 모두 디스켓에 기록되는 것처럼 분필에도 존재한다.
칠판에 그린 선의 길이는 분필의 길이와 같다. 그건 분필의 자화상이고, 자화상은 분필의 복제물이다. 다만 아주 가늘고 평평할 뿐이다. 길이가 578미터인 선은 대단히 길고 평평한 분필과 똑같다.
칠판에 그려 안을 분필로 석찰한 큰 원은 아주 두껍고 짦은 분필이라고 할 수 있다. 분필의 모양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그래도 분필은 여전히 분필이다.
분필은 그 자체가 선이다. 다시 말해 잡아서 던질 수 있을 만큼 굶은 3차원적 선으로, 이는 실물과 똑같은 자화상이다. 사실 너무나 똑같아서 그림과 실물을 구분할 수 없다. 그림과 실물이 동일한 것은, 다른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나무는 목재로 그린 3차원 그림이고, 기중기는 철로 그린 3차원 그림아ㄷ.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중기는 기중기로 그린 기중기의 3차원 그림이다. 스카이라인은 빌딩으로 그린 선이고, 적도는 분필로 그린 가는 선이다. 이 분필은 가루가 날리지 않는다. 이 분필로는 무한히 긴 선을 그릴 수 있다.
p. 44 ‘위대한 몽상가’ / 테오 얀센
과연 media art는 무엇인가. 궁금함에 위키피디아는 뭐라고 말을 하나 하고 들어가보았다. 위키피디아의 ‘New media art’항목을 읽어내려가다가 10명 남짓한 큐레이터 항목에 Won-il Rhee라는 한국사람일것 같은 이름이 있길래 어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소한 이름인데다가 미디어 아트 전문인 큐레이터가 있었나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미술계의 인디아나존스라는 문장이 눈에 띄어 눌러봤다.
아시아의 스필버그, 미술계의 인디애나 존스, 독립투사, 전사, 방랑자…. 이원일(48) 큐레이터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이 큐레이터는 지난 4년 동안 텃세 심한 해외 미술계에서 굵직굵직한 미술관 전시와 국제비엔날레를 10여 차례나 맡았다. 심포지엄과 초청 강연, 심사 등을 맡느라 무려 2백50여 회나 비행기를 탔다. ‘시차’를 무시한 그의 강행군은 결국 나폴리에서 강연 도중 피를 흘리며 응급실로 실려 가는 걸로 마무리됐다. 그 아찔한 기억을 돌이키며 이 큐레이터는 “이제 그렇게 무식하게는 안 한다”고 말했지만, 베이징에서 막 돌아와 기자를 만난 그의 일정은 여전히 살인적이었다.
내가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이미 많은 활동을 하셨구나.
이 큐레이터는 서구의 편협하고 오만한 미학체계와 역사를 거침없이 공격해왔다. 200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의 프레젠테이션 때 “당신이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해 말하는 적법성에 대해 말해보라”는 MoMA 관장의 주문에 “당신이 먼저 미국과 유럽이 일방적으로 써온 역사, 즉 미술사에 대한 정당성을 1분 동안 얘기한다면, 나도 아시아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쏘아붙여 그들을 굴복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어찌 보면 공격적으로 비칠 수 있음에도, 자신이 ‘먹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흥미가 생겼다.
현재 이 큐레이터는 스위스 BSI은행 문화재단의 상임 큐레이터로도 일하고 있다. 월 2천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원하는 대로 전시를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꿈의 직장’이다. 월급의 대부분을 전시 기획과 항공료에 쏟아붓고 있는 그는 “아시아적 비전을 장착한 채 날아다니는 전투기처럼 살아가겠다”고 했다. 바람이 있다면, 더 많은 후배들이 양성돼 ‘아름다운 편대 비행’이 가능했으면 하는 것이라고.
멋지다. 아름다운 편대 비행. 이런 큐레이터가 있는 줄 몰랐네.
그제서야 알게 된 그의 부고는 부풀어진 내 기대감을 허무하게 무너뜨리고 말았다.
아아.
벌써 수년전에 돌아가신 분이지만, 최근의 여러 사람들의 사망소식 때문일까. 안타까운 사람들이 계속 떠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예술과 미디어아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셨던 분이라서 그런지 안타까움이 더 커진다.
아마도 지금의 미디어시티 서울 전은 이원일 큐레이터에게 빚을 지고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그의 기사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옮겨 본다.
그의 큐레이터관(觀)과 삶의 태도를 아우르는 건 ‘어항 밖 이론’이다. 물고기는 어항을 떠나면 죽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그는 물고기는 어항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고기가 어항 밖으로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죽는다고? 천만에. 물고기는 어항 밖 세상을 보기 시작할 것이고, 나아가 어항 밖 세상에서 살기 위한 호흡법을 깨우칠 것입니다.”
그는 한국미술의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 혹은 아시아라는 어항에서 벗어나야, 바깥에서 볼 수 있어야 우리의 실체가 더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위대한 한국인이 될 게 아니라 위대한 개인이 되는 게 먼저다. 백남준은 ‘한국의 아티스트’가 아니라 ‘위대한 아티스트’가 먼저였다”는 논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허브’니 ‘아시아 하이웨이’니 하는 공허한 수사학 대신에 우리나라의 태생적 한계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모두가 동의할 만한 수사학을 만들어내자고 역설한다. 그래야만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5년 전에는 그 또한 ‘어항 속 물고기’였다. 성곡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학예부장으로 일하던 그는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게 고문처럼 느껴져서’다. 마침 그때 제4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다. 그는 무작정 떠났고, 독립큐레이터로 첫발을 뗐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뒤늦게 알아서 더욱 안타까운. 그. 이원일.
편히 쉬시기를.
어떤 언어든지 6개월 안에 배울 수 있다는 크리스 론스데일의 강연.
내용은 짧지만 큰 공감이 되었는데, 그동안 나 역시 영어공부를 하면서 많은 이론들을 접했었는데, 그 중의 태반이 일정 연령 이상의 어른이 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런 이야기들이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로 꼽히곤 하는데, 그런 통념에 반기를 드는 맘에 드는 이론이다.
2014.11.16
산방산 위에 흐르는 바람에 밤이 진다.
우린 얼마나 작고 유한한 존재인가.
단 하나뿐인 우리의 삶은 얼마나 소중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