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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것은 5주 전인데 이러저러해서 읽지 못한채로 반납하고 독서모임일을 하루 남겨놓고 하루만에 다 읽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스터디그룹의 승준님이 보여주셨을땐 매우 유익할것으로 보여 읽어보고 싶었지만, 역시 건전한 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드디어 완독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너무나 재밌고, 내용도 훌륭했으며 나도 모르게 내 고민을 해결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답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문제를 말이다.

이 책

이 책은 일단 잘썼다. 일본인은 책을 잘 쓰는 것일까. 편집자가 좋은 사람인걸까. 글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가끔은 가볍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전 원래 진지한 사람입니다 하는 듯한 자세 말이다. 베어있다는 표현처럼, 분위기가 글에서 뚝 뚝 묻어나온다. 또한 자본론과 빵집 운영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너무 잘 조화를 이룬다. 저번에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철학자와 늑대’도 늑대 이야기와 철학 이야기를 이와 같은 형식으로 잘 버무리려고 했었는데, 왠지 후반부로 지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균형을 너무 잘 잡았다. 글의 구성도 마치 영화처럼 시공을 오가며 긴장시켰다가 웃음을 자아냈다가 감동을 잔잔히 전하곤 한다. 번역의 힘인가, 편집의 힘인가. 여하간 흐름이 너무 좋았다.

문체

군더더기가 없다. 일본문학의 특징일까. 아니 모든 잘 쓴 글은 뺄 수 없을 때까지 빼고 또 빼야 한다. 빼는 것을 참 잘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신한 표현들.

부패와 발효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온다.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론 나오지만 이를 경제와 연관시켜 보는 시각이 재밌다. 모든 생물과 유기물은 발효나 부패를 거쳐 다시 순환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꾸준히 늘어날 뿐 부패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부패하지 않는 경제는 문제가 있다. 다함께 경제를 부패시키자.

자본론 이야기

마르크스가 이렇게 쉽고 재밌었단 말인가.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자본론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원래 자본론이 이렇게 쉽게 재밌을리는 없을것 같은데, 궁금해서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겠다. 또한 요즘들어 젊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느끼는 피로를, 백년도 전에 간파한 마르크스는 역시 그냥 네임드가 아니였다. 이참에 우리모임도 자본론을 읽는거다.

이 책에 자본론이 구성되는 과정이 쉽고 재밌게 표현되어 있어서 아래에 정리해본다.

자본주의의 기본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 장치의 근본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데,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드는 열쇠는 바로 노동력에 있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이윤이 생기니 자본가가 좋다.

상품이란 무엇인가.

  • 사용가치가 있있어야 한다 : 누군가가 그걸 필요로 해야 한다.
  • 노동에 의해 만들어질 것
  • 교환할 수 있는 것
    교환할 수 있는 대상의 크기를 ‘교환가치’라고 한다.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 노동시간의 크기다.
수요와 공급이 아니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특징

  • 사는 사람은 자본가뿐이다.
  • 교환 가치는 임금이다.
  •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비 및 양육비용과 기능 습득에 비용을 합한 금액으로 구성된다.

이윤의 발생 과정

노동자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킨다. 그럴수록 노동자는 힘들어지지만 노동자인 이상 어쩔 수 없다.

기술혁신

기술혁신은 더 많은 상품을 만들게 하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듯이 보인다.
아니다. 기술혁신은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리고, 노동자의 생활비와 양육비가 낮아진다.
그 결과 노동력의 교환가치가 떨어진다. 따라서 임금도 낮아진다.
또한 기술혁신은 노동을 단순하게 만들기 때문에 기술습득 비용을 낮춰 임금도 낮아진다.

음식

음식 값이 쌀수록 생활비가 싸고, 임금이 싸진다.

노동자가 어떻게 상품이 되었는가

노동자가 될 수 있는 조건:
자유로운 신분일 것.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결론

책 자체도 재밌었고, 내용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내 고민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 반가웠던 것 같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자본주의를 벗어난다기 보다는 자본주의 안에서 지혜롭게 사는 방식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 방법은 바로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것. 자본주의에서 불어나는 돈이 문제를 만든다고 보고, 돈으로 이익을 남기지 않는 결심을 한 것이다. 어려운 결단이고, 환영하는 바이다. 그런 방식으로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바로 이웃인 우리 한국만 봐도, 사람들이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돈에 집착하게 된다. 그럴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보기엔 이타루의 이야기도 한낱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수도 있다. 어쩌면 거기엔 완벽한 해법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건 안된다며 책을 덮기보다는 이런 식의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만약 나라면 하는 생각으로 더 좋은 생각을 떠올려 보는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모여 실천을 이룬다면 언젠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산이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래는 인상적인 구절들

이런 진리를 깨달은 우리 부분은 돈도 ‘부패’하게 하고, 경제도 ‘부패’하게 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이런 움직임이 소리 없이 확산되고 있다. 언젠가는 지역사회를, 국가를,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15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일본의 변두리 작은 시골마을에서 소리없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프롤로그>

과연 시스템의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p.34

노동자가 혹사당하는 이유는 자본가(경영자) 탓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자본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구조에 편입되어 노동자를 학대한다는 것이다.
<자본론> 안에는 마르크스의 독특한 표현이 나온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 장치의 근본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데,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드는 열쇠는 바로 노동력에 있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자본가가 좋아하는 이윤이 생기니 노동자는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p.43 마르크스와 노동력 이야기

상품 가격의 비밀: 평균적인 역량을 기준 삼아 노동시간을 어림잡고 교환가치를 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교환가치의 크기를 돈이라는 척도로 표현한 것이 상품의 가격이다.
마르크스의 생각에 따르면 가격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교환가치에 있고, 수요와 공급은 가격을 변동시키는 2차적 요소라고 한다.
p.47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혁신은 결코 노동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p.63

기술혁신은 대부분의 경우 노동을 단순하게(또는 쉽게)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빵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이스트를 환영했던 이유도 노동의 수고를 확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언뜻 제빵 기술자에게도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사실은 노동자의 목을 죄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도 역시 노동력의 교환가치(임금)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노동이 단순해지면 기술은 필요 없어진다. 그러면 기술습득 비용이 굳는 만큼 임금도 낮아지는 것이다.
p.67 균과 기술혁신 이야기

이스트를 사용해 누구라도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빵 값이 싸지고 빵집 노동자는 싼 값에 계속 혹사당하게 된다. 또 공방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단순해져서 빵집 노동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빵집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
p.70

일(노동력) 값을 깎아내리기 위해 음식(상품) 값을 내린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구조다.
p.69

바로 이런 자연의 섭리를 결제활동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각자의 생을 다하기 위한 배경에 부패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면 부패하는 경제는 우리 각자의 삶을 온화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빛나게 해주지 않을까?
… 균이 했던 것처럼 사람이나 지역도 부패하는 견제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힘을 발휘하면 삶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p.85 부패하지 않는 빵과 부패하지 않는 돈

우리가 들여온 유기재배 쌀은 대량의 동물성 퇴비(단백질)를 먹고 자랐다. 그래서 영양과다 상태, 생명력이 약한 상태였던 것이다. 산과 들에는 대량의 동물성 퇴비 따위는 없다. 따라서 작물에 단백질이 포함되는 비정상적 사태를 천연 누룩균이 감지하면 ‘이상하다. 분해해서 흙으로 되돌리자.’라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자연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해소하기 이후ㅐ 천연 누룩균이 단백질을 분해하러 달려들게 되고, 그 탓에 밀에 포함된 단백질(글루텐)까지 모조리 분해되어 빵이 부풀지 못하는 것이다.
p.137 균의 목소리를 들어라.

엔데는 돈을 ‘사람들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교환을 위한 돈=빵집에서 쓰는 돈’과 ‘자본이 사업을 통해 불리려 하는 돈=자본으로서의 돈’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 두 종류의 돈에 동일한 ‘법정통화'(엔, 달러 등)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와 삶이 혼란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돈을 나누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빵집에서 쓰는 돈으로는 도시를 목적으로 한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돈, ‘지역통화’를 쓰자고 제안했다.
p.177 참다운 시골살이는 순환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노동자가 모두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 오히려 이 시대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 의미를 잘 표현한 것이 ‘소상인’이라는 단어
p.185 착취하지 않는 경영형태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소상인의 시대가 아닐까?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정비되어 규모가 작아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태넷과 소셜 미디어는 정보의 수집과 발신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큰 무기인가?
p.186 착취하지 않는 경영형태

Tags : #시골빵집 #자본론

내 목소리는 억지로 허세를 부리는 듯한 억양이어서 하찮은 잔꾀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윽고 마호니가 나를 알아보고는 "어." 하며 큰 소리로 응답했다. 마호니가 들판을 가로질러 나에게로 달려올 때 내 가슴은 반가움으로 얼마나 뛰었던가! 그는 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듯이 달려왔다. 그리고 나는 뉘우쳤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그를 약간 무시하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뜻밖의 만남>

그 어둠 속을 뚦어져라 쳐다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해영에 쫓겨 농락당하는 한 마리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두 눈은 번민과 분노로 불타올랐다.
<애러비>

그녀는 무기력한 짐승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사랑이나 작별 또는 인식의 아무런 표시도 그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이블린>

저번주 독서모임에서 <더블린 사람들>이 선정되어 책을 읽은 후기와 토론 후기를 정리해 본다.

더블린을 소재로 한 <더블린 사람들>은 13편의 짧은 단편들을 묶은 첫 작품이다. 내가 읽은 건 펭귄클래식코리아 선집이었는데, ‘음울한 도시의 초상’이라는 긴 서문이 나온다. 그 서문에서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제임스 조이스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와 함께, 각각의 글이 쓰여진 배경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본 소설은 훨씬 가볍고 재밌었기 때문에 이 서문은 맨 뒤에 넣는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생각보다 쉽고 경쾌하다. 5~10장 내외의 분량으로 눈에 그려지는 묘사와 여운이 남는 마지막 결말이 맘에 들었다. 그의 결말짓는 방식은 담담히 때로는 경쾌하고 밝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구김이 있고 삶이 힘들지만 나쁘지 않다. 삶은 원래 이런 것이니까. 아주 낙담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다 ‘앗’하며 소설은 갑작스럽게 끝난다. 밝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의 얼굴에 아주 잠깐 슬픈 표정이 스친 순간 영상과 소리가 어색하게 정지하듯이. 우리 주변의 이야기같은 생활들은 그 환경에 비해 밝고 긍정적이라 왠지 더 서글펐고, 애써 슬픔이나 실망을 감추려는 듯이 보인다. 일상이라면 1초도 안되는 새에 지나갔을 그 순간과 감정을 깊고 진하게 증폭시킨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단락은 끝나고 다음 편의 제목이 펼쳐진다. 토론하기전엔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부분이 불편하다는 분도 계셨다.

단편은 저마다 다른 주제와 인물들을 다룬다. 20세기 초반 더블린을 무대로 한다는 공통점외에 인물들의 신분이나 연령, 위치나 맥락 모두 다르다. 삶의 굴곡과 위에서 아래까지 가진 인물들을 다루면서, 아니 도대체 나이가 몇살이길래 했던 그의 당시 나이는 23살. 젊은 조이스가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동안 인생의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나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특히나 중년의 사랑을 다룬 ‘가슴 아픈 사연’은 가슴을 울렸다. 24살의 나이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걸출한 사랑 에세이를 쓴 알랭 드 보통도 생각이 난다.

마지막 단편이며 강신주의 감정수업에도 실린 ‘죽은 사람들’혹은 ‘죽음’은 비교적 가장 난해했던 소설이다. 아내를 너무나 세속적이라고 좋지않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건 나였구나 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주인공.

읽는 내내 백년 전 더블린의 이야기가 다른 나라 이야기 같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녀들에게 집작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라던가, 내가 있는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을 동경하고 떠나고픈 열망이라던지, 찌질하고 갈 곳없는 젊음의 방황이라던지, 우리네가 벗어나기 힘든 질투와 멸시의 감정이라던지. 그 많은 감정들이 짧은 장면들로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어쩜 이렇게 간단하게도 나타낼 수 있을까. 참 잘쓰는구나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분명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던 단편집과 재밌었던 토론. 오랜만에 괜찮은 소설을 만났다.

어떻게 글을 쓸까 라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항상 내가 잘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이 빠지는 것 같다. 어떤 블로그나 댓글에서조차 잘 쓰는 글은 혹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은, 빛이 난다. 아 재능이란 이런거구나.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물론 잘 쓰는 사람이 되려면 많이 써야 할 것인데, 나는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다지 그럴 것 같진 않으니 나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이네) 그런 고민끝에 다다른 한가지 방향은 이렇다.

  • 아마도 난 글을 썩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좋아하는 것 같다.
  • 그건 아마 말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것 같다. 난 내가 과묵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만보면 쉴새없이 말하고 있을 때도 있으니.
  • 그 누군가에게 말 하듯이 글을 쓰자. 좀 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어깨 힘 빼고. 그냥 말하듯이.
  • 잘쓴글이 아니더래도 어쩌냐. 그냥 솔직하게 쓰자.
Tags : #글쓰기

칠판에 글씨를 쓰면 분필의 모양이 바뀐다. 쓴다는 것은 조각을 하는 것과 같으며, 글을 쓰는 사람은 언어의 조각가이고, 설계사는 선의 조각가이다. 글로 된 문서와 이미지 파일이 모두 디스켓에 기록되는 것처럼 분필에도 존재한다.

칠판에 그린 선의 길이는 분필의 길이와 같다. 그건 분필의 자화상이고, 자화상은 분필의 복제물이다. 다만 아주 가늘고 평평할 뿐이다. 길이가 578미터인 선은 대단히 길고 평평한 분필과 똑같다.

칠판에 그려 안을 분필로 석찰한 큰 원은 아주 두껍고 짦은 분필이라고 할 수 있다. 분필의 모양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그래도 분필은 여전히 분필이다.

분필은 그 자체가 선이다. 다시 말해 잡아서 던질 수 있을 만큼 굶은 3차원적 선으로, 이는 실물과 똑같은 자화상이다. 사실 너무나 똑같아서 그림과 실물을 구분할 수 없다. 그림과 실물이 동일한 것은, 다른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나무는 목재로 그린 3차원 그림이고, 기중기는 철로 그린 3차원 그림아ㄷ.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중기는 기중기로 그린 기중기의 3차원 그림이다. 스카이라인은 빌딩으로 그린 선이고, 적도는 분필로 그린 가는 선이다. 이 분필은 가루가 날리지 않는다. 이 분필로는 무한히 긴 선을 그릴 수 있다.

p. 44 ‘위대한 몽상가’ / 테오 얀센

과연 media art는 무엇인가. 궁금함에 위키피디아는 뭐라고 말을 하나 하고 들어가보았다. 위키피디아의 ‘New media art’항목을 읽어내려가다가 10명 남짓한 큐레이터 항목에 Won-il Rhee라는 한국사람일것 같은 이름이 있길래 어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소한 이름인데다가 미디어 아트 전문인 큐레이터가 있었나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미술계의 인디아나존스라는 문장이 눈에 띄어 눌러봤다.

미술계의 인디애나 존스, 독립큐레이터 이원일 씨

아시아의 스필버그, 미술계의 인디애나 존스, 독립투사, 전사, 방랑자…. 이원일(48) 큐레이터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이 큐레이터는 지난 4년 동안 텃세 심한 해외 미술계에서 굵직굵직한 미술관 전시와 국제비엔날레를 10여 차례나 맡았다. 심포지엄과 초청 강연, 심사 등을 맡느라 무려 2백50여 회나 비행기를 탔다. ‘시차’를 무시한 그의 강행군은 결국 나폴리에서 강연 도중 피를 흘리며 응급실로 실려 가는 걸로 마무리됐다. 그 아찔한 기억을 돌이키며 이 큐레이터는 “이제 그렇게 무식하게는 안 한다”고 말했지만, 베이징에서 막 돌아와 기자를 만난 그의 일정은 여전히 살인적이었다.

내가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이미 많은 활동을 하셨구나.

이 큐레이터는 서구의 편협하고 오만한 미학체계와 역사를 거침없이 공격해왔다. 200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의 프레젠테이션 때 “당신이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해 말하는 적법성에 대해 말해보라”는 MoMA 관장의 주문에 “당신이 먼저 미국과 유럽이 일방적으로 써온 역사, 즉 미술사에 대한 정당성을 1분 동안 얘기한다면, 나도 아시아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쏘아붙여 그들을 굴복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어찌 보면 공격적으로 비칠 수 있음에도, 자신이 ‘먹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흥미가 생겼다.

현재 이 큐레이터는 스위스 BSI은행 문화재단의 상임 큐레이터로도 일하고 있다. 월 2천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원하는 대로 전시를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꿈의 직장’이다. 월급의 대부분을 전시 기획과 항공료에 쏟아붓고 있는 그는 “아시아적 비전을 장착한 채 날아다니는 전투기처럼 살아가겠다”고 했다. 바람이 있다면, 더 많은 후배들이 양성돼 ‘아름다운 편대 비행’이 가능했으면 하는 것이라고.

멋지다. 아름다운 편대 비행. 이런 큐레이터가 있는 줄 몰랐네.

그제서야 알게 된 그의 부고는 부풀어진 내 기대감을 허무하게 무너뜨리고 말았다.
아아.
벌써 수년전에 돌아가신 분이지만, 최근의 여러 사람들의 사망소식 때문일까. 안타까운 사람들이 계속 떠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예술과 미디어아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셨던 분이라서 그런지 안타까움이 더 커진다.
아마도 지금의 미디어시티 서울 전은 이원일 큐레이터에게 빚을 지고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그의 기사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옮겨 본다.

그의 큐레이터관(觀)과 삶의 태도를 아우르는 건 ‘어항 밖 이론’이다. 물고기는 어항을 떠나면 죽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그는 물고기는 어항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고기가 어항 밖으로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죽는다고? 천만에. 물고기는 어항 밖 세상을 보기 시작할 것이고, 나아가 어항 밖 세상에서 살기 위한 호흡법을 깨우칠 것입니다.”

그는 한국미술의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 혹은 아시아라는 어항에서 벗어나야, 바깥에서 볼 수 있어야 우리의 실체가 더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위대한 한국인이 될 게 아니라 위대한 개인이 되는 게 먼저다. 백남준은 ‘한국의 아티스트’가 아니라 ‘위대한 아티스트’가 먼저였다”는 논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허브’니 ‘아시아 하이웨이’니 하는 공허한 수사학 대신에 우리나라의 태생적 한계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모두가 동의할 만한 수사학을 만들어내자고 역설한다. 그래야만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5년 전에는 그 또한 ‘어항 속 물고기’였다. 성곡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학예부장으로 일하던 그는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게 고문처럼 느껴져서’다. 마침 그때 제4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다. 그는 무작정 떠났고, 독립큐레이터로 첫발을 뗐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뒤늦게 알아서 더욱 안타까운. 그. 이원일.
편히 쉬시기를.

어떤 언어든지 6개월 안에 배울 수 있다는 크리스 론스데일의 강연.
내용은 짧지만 큰 공감이 되었는데, 그동안 나 역시 영어공부를 하면서 많은 이론들을 접했었는데, 그 중의 태반이 일정 연령 이상의 어른이 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런 이야기들이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로 꼽히곤 하는데, 그런 통념에 반기를 드는 맘에 드는 이론이다.

http://herocomics.kr/viewer/list/#JE

오랜에 정말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이 좀 아쉽긴 하지만 깔끔한 결말이라는 생각도 들고.
해리포터시리즈를 제작했던 David Yates가 영화화를 한다니 기대된다.
오랜만에 정말 즐겁게 읽은 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