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촉각은 단순히 접촉자극을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를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자극의 총체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 명백히, 우리의 뇌는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인상들에게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물리적 구성에 조응하는 불변의 구조를 걸러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윌리엄 깁슨

어떤책에서 밑줄친 건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아마도 매드 사이언스 북이 아니었을라나. 요는 이렇다. 우리는 눈을 감고 손가락만으로 어떤 물건을 만질때 단지 그 느낌만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거칠다, 차갑다, 뜨겁다, 미끌거리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그런 정보를 수동적으로 전달할 뿐만이 아니라 촉각을 통해 대상을 유추해낸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총체적인 흐름’이 되어 우리가 눈을 감고도 아이의 손인지, 할머니의 손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머리속에서 비교와 추리를 통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번쩍 하고 알게 해 준다.

그렇다. ‘변화하는 감각인상들에게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물리적 구조를 걸러내는 능력’바로 그것이다. 라고 무릎을 치며 적어놓지 않았으려나.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면 당신은 인생에서 하루도 일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약속의 따뜻함에 들떠서 굴복하기 전에, 딴지를 걸어보자. “일을 마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서 정확히 누가 이득을 보는건가?” “왜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도 일 하지 않는것처럼 느껴야 하는가?” 그 말이 힘을 실어주는 노동의 착취 메커니즘을 숨기는 동안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사실 자본주의의 가장 완벽한 이데올로기적 도구가 됐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의 허구 중에서

너무나 당연한 말 같은 주문. 그 말은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을 사랑하라는 말이겠지.

요즘들어 집 근처에 자주가는 카페가 있다.
적당히 사람이 없고, 조용하고 전체적인 조명이 따뜻한 파스텔톤이라 마음이 편하다. 창밖을 향해 앉아 있다보면 유리문 바깥에 고양이가 얼쩡거릴때가 있다. 흰 털에 새까만 얼룩을 엎지른듯한 냥이는 꼭 유리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털손질을 하거나 길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문 바로 옆이라 다른 고양이들 처럼 들어올 법도 한데 들어오지 않고 선을 지킨다. 이 가게의 방침인지 그 고양이의 방침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너는 손님, 나는 고양이’ 같은 당당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도 시야안에서 얼쩡대길래 그려보았다. 몸통은 그리기 쉬우나 고개가 너무나 빠르게 움직여 머리와 손을 그리기가 힘들었다. 이쪽손 저쪽손 핥으랴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신경쓰라, 지나가는 사람 쫒으랴. 고양이는 정말 예민한 동물이구나 싶다. 오랜만에 연필로 그려봐서 그런지 재밌다. 역시 그리기에는 살아 움직이는게 좋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얼굴이던 몸이건, 그리기가 쉬우면서 쉽지않고, 재밌다.

저녁을 먹고 한참 컴퓨터를 하다 엇그제 따놓았던 와인이 생각나 한잔 마셨다.
아마 만원이 좀 안되게 이마트에서 사왔던것 같은데, 달달해 보이는 라벨의 아르헨티나산 와인이다. 하얗고 불은 색의 라벨이 너무 지나치게 싶을 정도로 달것만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데, 집에와서는 이걸 왜골랐지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맛은 괜찮았다. 와인맛을 평가할정도로 많이 마셔보질 않아서 표현이 정확할지는 모르겠으나마는, 첫맛은 적당히 달아 목을 넘기며 지나치지 않은 쓴맛이 달콤하게 넘어간다. 말하자면 진한 붉은색 같은 단맛이라고 할까. 단맛이 입안에 남지않고 깔끔하게 사라져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제품명은 뜨리벤또 스위트 말백. 12%의 도수다. 뚜껑은 당연히 코르크겠지 했는데 돌려따는 알루미늄 마개로 되어있어 간편하게 열고 닫을수 있다. 그리고 이틀 지났는데도 맛있네. 내 입이 둔한건지. 반 정도 남은 와인을 오늘 다 마시게 될것 같다. 이 와인을 기준삼아 다른 레드와인을 맛보면 재밌을듯… 하지만 내 미각의 기억력은 너무나 나빠서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군.

김영호
Kim Yeongho

환경이 변하고 있다.

6달 전에 이곳에 이사와 처음에 어수선했던 집안이 이젠 많이 정리가 되었다. 처음엔 뾰족한 곳을 밟기도 하고 팔이나 어깨로 벽에 부딫히기도 하고 뭘 차서 넘어뜨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몸이 집을 기억하는지 익숙해 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여름엔 무더워 고생한 기억이 희미해져 지금은 창문을 자주 열진 못하지만 가끔 낮에 잠깐식 은은하게 방 안을 채우는 햇살이 참 반갑다.

3달 전부터 시작한 운동은 많은 걸 바꾸었다. 하체운동을 하고 계단을 벌벌 떨면서 내려간 적도 있었는데 이젠 제대로 운동한 후의 뻐근한 느낌이 참 좋다. 제주도 여행하면서 운동효과를 가장 많이 느꼈는데, 하루종일 걷거나 산을 올라도 힘이 넘치는 느낌, 육체 활동 후의 내가 몸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가장 만족스럽게 만든다. 시작은 정말 미약하고 이러다 죽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두달이 넘어가는 식단조절은 허리를 1인치 줄어들게 했는데 그외 시각적인 변화는 많지 않아 아쉽다. 닭가슴살이 점점 질려가고 있어 새로운 조리법을 찾아보려 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게 나를 가장 무섭게 만들고 있다.

2개월 전 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근 10년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생활패턴 – 출근이나 공부를 벗어나 목적이 없는 삶으로 일탈하고 나니 뭐랄까… 네비게이션 없이 도로를 이탈해버린 느낌도 들지만 은근히 재밌는게 이러다 영영 도로로 돌아가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위험한 느낌 역시 즐기는 중이다.

시간이 많아졌지만 의외로 더 빨리 흘러가고, 생각이 많아지는데 이를 줄이고 행동을 많이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블로그를 열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어떻게 할지 생각을 전혀 못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가져오는 기능이 있나 하고 찾아보니, 그동안 쓴 글들을 예쁜 포맷의 PDF로 만들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놈들같으니…

어차피 모두 다 옮겨오려고 하지 않았으니 몇개씩 손으로 옮겨와야 할 것 같다. 이제야 네이버 블로그를 떠날 이유가 분명해졌네. 좀 늦긴 했지만.

오후에 변두리 어느 집의 열린 문틈으로 작은 탄피가 떨어져 수족관에 있던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전용으로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밤새도록 성당의 검은 관대 옆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다. 관대 위, 관 속에는 은색 물고기 두 마리가 놓여 있었는데, 심연만큼이나 깊은 검은 상자 안에 놓여 있는 그것들을 보려면 한참은 몸을 숙여야 했다. 나중에는 영구차에 달린 말 여섯맘리가 별 힘들이지 않고 이따금씩 그것을 싣고 다녔다. 장례식 담당자는 도시의 공공선을 위해서 그들의 숭고하고 고귀한 발자국이 필요하다고 말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때 마부가 말들의 콧구멍을 살짝 쳤고, 정작 효과를 발휘한 건 그거였다. 장례식에서 주교는 무덤 위에 서서 열의에 찬 설교를 했지만, 실수로 자기 장백의를 밟는 바람에 아래로 떨어졌다. 모두 집중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갑자기 사라진 걸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실수로 그에게 흙을 뿌렷다. 그는 결국 다시 끌어 올려졌고, 묘지기들은 사과를 해야 했다. 그는 정말 기분이 언짢았다. 하지만 그 장례식 이후에 적군에 대한 반감이 전반적으로 눈에 띄게 높아졌다.

-‘포위된 도시의 연대기’ 중    
http://zenate.tistory.com/1453

“Sometimes I’d wake up at two or three in the morning and not be able to fall asleep again. I’d get out of bed, go to the kitchen, and pour myself a whiskey. Glass in hand, I’d look down at the darkened cemetery across the way and the headlights of the cars on the road. The moments of time linking night and dawn were long and dark. If I could cry, it might make things easier. But what would I cry over? Who would I cry for? I was too self-centered to cry for other people, too old to cry for myself.” — South of the Border, West of the Sun by Haruki Murakami.

사카모토상이 늙었다
뭐라 얘기하는데, 크리스마스 인사인가. 알아듣는 단어는 단지 그것뿐.
그를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 전반부는 음악에 미쳐, 지금은 그의 글과 얼굴만 봐도 좋다.
늙어간다. 그 역시 사람이구나.
머리도 희끗한것 같고.
그가 죽는다면 아아, 안타깝고 슬프겠지만, 왠지 안심이 된다.
늙는다는 것에 대해. 바스러져 가는, 시간의 풍화작용을 헤치고 있다는 왠지 모를 안심이.
영원이란 것은. 멋없다. 플라스틱처럼.
늙고 희끗해지고 구부러지는 모든 것들(이들)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늙음예찬을 해보는구나. 얼쑤